아난다여, 나는 이제 늙어서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그만 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사람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는가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진리를 섬으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이다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오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사랑한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 랑 의 쓸 모
저는 어렸을 때 물개 인형을 좋아했습니다. 이모 떄부터 내려오던 유서 깊은 인형이었죠. 길이는 1m 20으로, 일곱 살 무렵에도 물개 인형이 저보다 컸었어요. 까만 플라스틱으로 된 눈동자와 보드라운 코, 낚싯줄로 만든 수염까지, 배게 대신 베고 누워 물개의 미간을 쓰다듬으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름도 따로 지어주지 않았었어요. 물개는 물개라서 물개였으니까요.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어느 날 집에 와보니 물개가 사라졌었어요. 새빨갛게 피가 나오도록 긁어대던 제 아토피를 보다 못한 엄마가 가져다 버린 것이었죠(물개가 아토피의 이유는 아닌 것 같지만). 당연히 저는 헌옷 수거함으로 내려가 물개를 주워 왔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생각나는게, 맨날 물개를 베고 질질 끌고다니고 하면서 물개 지느러미가 뜯어져서 물개 솜이 비어져 나오고, 너덜너덜거려서 엄마에게 수선해 달라고 떼를 썼었네요. 그것도 세 번 정도.. 엄마는 어쩌면 바느질이 지겨워져서 물개를 내다 버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였든 물개는 어느 날 집에서 사라져 버렸고, 아직도 물개 인형이 그립습니다. 언젠가 재봉을 배워서 물개 인형을 다시 만드는 게 버킷리스트의 항목에 당당히 들어가 있어요.
이렇게 작은 물건에도 사랑은 깃들고, 사라지면 아프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죠. 잃은 지 15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생각나는 것처럼요. 만약 당신이 사람을 사랑했다면, 사라진 사랑이 엄청나게 아플 수도 있습니다.
예전 한 여름에, 학교 앞의 츄러스 가게를 지나가던 적이 있었습니다. 츄러스 가게가 유행했던 시절인데, 그 가게는 독특하게도 레모네이드도 열심히 팔았죠. 시럽에 물을 타 대충 만들지 않고, 레몬을 잘라 착즙기에 넣는 본격적인 레모네이드였습니다. 더위에 못 버티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레모네이드 한 잔을 시켰는데, 사장님은 레모네이드를 주는 대신 뜬금없는 미소를 던졌습니다.
'저희 가게에 언제 오시나 했어요.'
무슨 말일까요. 저는 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마 머리 위에 물음표가 수십 개는 떠 있었을 거예요.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셔서 - 매일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환하게 웃고 계시더라구요. '
저는 그 말에 사로잡혀서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츄러스 가게를 들렀죠.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어요. 딱 하루 들르지 않은 날이 있었는데, 사장님이 '어제 ----했었죠?' 라고 알아버린 통에 쓴 웃음만 지었었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였습니다. 고민 상담도 드럽게 많이 하고, 가게 문 닫고 맥주를 같이 홀짝거리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나 어느 날 사장님은 싱가포르로 이민을 간다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혹시 젠가 아세요? 사람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의 일부분이 됐다가,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고. 저는 심적으로 좀 힘들었습니다. 마음 깊이 의지하던 사람이 어느 날 사라지는 일은, 무릎 아래로 뼈가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걸을 때 세상이 튼튼한 지 의심하게 되고, 후들거리고, 눈앞이 캄캄할 때도 있고.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맨 처음의 이야기를 기억하나요.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변하지 마라고 붙잡는 것이야말로, 있을 수 없는 말이라구요. 흘러가는 강물을 손으로 움켜쥐어 멈출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보낸 이별 편지를 없던 일로 취소할 수도 없고, 누나가 이민을 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내 늙은 고양이의 털에 윤기가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것도 필연적인 일입니다. 안타깝게도요.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서 슬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고양이를 키우는 동안, 사랑을 하는 동안 천천히 변해 갔겠죠. 나만이 존재하던 방의 한 구석을 고양이의 자리로 마련해 놓기도 하고, 네 시에 당신이 온다면 그 전날 세시부터 행복해 하기도 하고, 꽃과 술과 촛불이 있는 정원을 마련해 놓고 당신이 오지 않으면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해 보기도 하고, 그리고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하기도 했을 겁니다. 집에 돌아가 고양이한테 '야옹'이라고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사람의 고양이에서 고양이의 사람으로 차츰 변해갔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변해 왔었고,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었을 겁니다. 나중에 겪었던 일들을 돌이켜 보며 짜릿한 생의 기쁨을 맛보겠죠. 사라져 버린 고양이의 자리를 보며, 아주 작은 것에서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큭큭 웃기도 하고 아파서 울기도 하고, 수백의 슬픔과 수천의 행복들을 헤아려 볼 겁니다.
사랑의 대상이 사라진다고, 변한다고
옛날의 시간들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죠.
그 때 그 사람과 나눴던 말들, 같이 있었던 일들은
수천의 기쁨으로 당신을 지탱해 줄 테니까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을 때,
어둠 속에서 포옹할 때
두 개의 빛이 만나, 하나의 빛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듯이.
그러나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하나의 빛으로 영원할 것만 같았다가도 언제고 자신의 길을 가겠죠. 그걸 인정하고, 좋았던 일들을 바라보며,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 할 수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화랑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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